지도에서 우리가 가본 길을 지우자 동네가 거의 남지 않았다.
나는 가장 멀리 돌아가는 길을 골랐다. 익숙한 빵집도, 버스 정류장도 지나지 않는 길이었다. 처음 보는 세탁소와 작은 철물점 사이를 걸으며 잠깐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철물점 앞에는 붉은 플라스틱 의자가 있었다. 너는 그런 의자에 앉으면 꼭 한쪽 다리를 흔들었다. 그 생각이 나자 나는 길을 건넜다. 건너편 가게에서는 네가 싫어하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너는 이 부분만 들으면 따라 부르며 놀리곤 했다. 나는 이어폰을 끼웠다가 바로 뺐다.
더 멀리 가면 될 것 같았다. 큰길이 끝나고 모르는 아파트들이 나왔다. 여기는 너와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곳이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물을 샀다. 계산대 앞에서 새로 나온 과자를 보자 네게 사진을 보내고 싶었다.
휴대폰을 든 채 웃음이 조금 나왔다. 너를 피해서 왔는데, 처음 보는 가게까지 네게 보여주려 하고 있었다.
지도는 집까지 사십칠 분이라고 했다. 나는 걸어온 길을 축소했다. 화면 안에 구불구불한 선이 남아 있었다. 만나기로 한 사람도 없고, 찾아갈 곳도 없으면서 이렇게 멀리 온 사람이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을 누르지 못했다. 휴대폰을 내려놓자 처음 보는 거리가 나타났다. 나는 네가 이 풍경을 보면 무슨 말을 할지 또 생각하고 있었다. 발뒤꿈치가 아파 길가에 앉았다. 신발을 벗자 살이 벗겨져 있었다. 네가 없는 곳을 찾느라 얼마나 걸었는지, 여기까지 나를 데려온 발은 한 번도 살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