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숫자를 잘못 눌렀다.
다시 눌렀다. 손가락이 원래 알던 순서를 잊은 것 같았다. 문 앞의 센서등이 꺼져 나는 팔을 들었다. 불이 다시 켜졌다. 안에 들어가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생긴 셈이었다.
새벽 한 시가 넘었다. 오래 걸어서 다리가 아팠다. 네가 생각나는 거리를 피해 여기까지 왔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현관 앞이 가장 어려웠다.
너와는 늘 여기서 오래 서 있었다. 들어가라는 말을 듣고도 문을 열지 않았다.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끝까지 하다 보면, 끝난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너는 먼저 돌아서지 않았다. 내가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발을 옮겼다.
비밀번호가 맞았다. 문이 열리자 기다리던 공기가 닿았다. 아무도 데우지 않은 방의 냄새였다. 나는 불을 켜지 않고 들어갔다. 발끝에 신발이 걸려 한쪽을 겨우 벗었다. 나머지는 발로 밀어놓았다.
침대에 눕자 걸을 때는 몰랐던 추위가 올라왔다. 이불은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있었지만 몸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밖에서는 무엇을 보아도 네가 생각났고, 이 방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않아도 네가 없었다.
나는 두 팔을 몸 가까이 모았다. 어둠에 눈이 익자 현관에 벗어놓은 신발이 희미하게 보였다. 오늘 나를 집 안으로 들여보낸 사람은 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