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떠난 뒤에는 대답이 잘 떠올랐다.
그때 그렇게 말할 걸. 그 말 뒤에는 이런 말을 붙일 걸. 나는 설거지를 하다가, 양말을 뒤집다가, 엘리베이터 숫자가 바뀌는 것을 보다가 적당한 문장을 발견했다. 네 앞에서 그렇게 어려웠던 일이 혼자 있을 때는 쉬웠다.
처음 며칠은 네가 너무 빨리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 말도 못 했는데 어떻게 끝이라고 할 수 있는지. 너는 항상 기다리는 쪽이었고 나는 조금 늦게 대답하는 쪽이었다. 늦는다는 건 안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네가 기다리던 얼굴들이 이어졌다. 괜찮으냐고 물었을 때. 다음 주에 시간을 낼 수 있느냐고 했을 때. 우리가 지금 어떤 사이냐고 묻던 때. 나는 각각 다른 날의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너에게는 하나의 긴 질문이었을지도 몰랐다.
현관 앞에서 열쇠를 꺼내다가 네 이름을 부를 뻔했다. 아직 손을 씻지도 않았는데 벌써 할 말이 생겼다고, 잠깐만 들어달라고.
문을 열었다. 네가 기다리곤 하던 자리에는 내 외투가 걸려 있었다. 나는 외투를 옮기려고 손을 뻗었다가 그만두었다. 옷걸이 아래에는 여전히 한 사람이 설 만큼 자리가 남아 있었다.
오늘 떠오른 대답은 다른 날보다 짧았다.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것을 말할 사람 없이 입안에서 오래 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