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가 네 발밑으로 굴러갔다. 나는 허리를 숙였다가 네가 먼저 줍는 바람에 어정쩡하게 멈췄다.
“여기.”
네 손가락에 하얀 가루가 묻어 있었다. 나는 지우개를 받으며 고맙다고 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 다시 말해야 하나 고민하는 동안 너는 창가로 돌아갔다.
나는 공책을 펼쳤다. 오늘 필기는 이미 끝나 있었다. 빠뜨린 것이 없는지 살피고도 공책을 덮지 못했다. 가방에 넣으면 집에 가야 할 것 같아 앞장을 다시 펼쳤다.
창밖을 보는 네 얼굴은 옆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 정도는 괜찮았다. 네가 조금만 이쪽으로 돌아보면 나는 다시 책상 위로 눈을 돌렸다. 들킬까 봐 그런 것인지, 눈이 마주쳤을 때 웃는 법을 몰라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복도에서 친구가 안 가냐고 물었다. 나는 금방 간다고 했다. 친구가 떠나고 나서야 그 말이 네게도 들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방 간다고 해놓고 계속 앉아 있으면 이상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정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가방을 메고 일어났다. 너도 창틀에 놓인 책을 집어 들고 문 쪽으로 걸었다. 나는 네 뒤를 따라가며 인사를 몇 번 연습했다. 내일 봐. 먼저 갈게. 둘 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하던 말이었다.
문 앞에서 네가 나를 보았다.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교실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 두고 갔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이대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끄덕였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너는 먼저 나가지 않고 문 옆에 서 있었다.
나는 책상으로 돌아갔다. 지우개는 이미 가방 안에 있었다. 지퍼를 열고 닫는 소리를 최대한 작게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