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가 귀찮다는 거잖아.”
그가 내민 휴대폰에는 내가 보낸 문장이 떠 있었다.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 나는 그 아래에 적었다 지운 말까지 기억했다. 집에 일이 좀 있어. 정리되면 얘기할게. 걱정을 더할 것 같아 보내지 않은 말들이었다.
“그런 뜻이 아니라…”
그는 화면을 껐다. 나를 만나는 일이 힘들어졌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느냐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처음부터 다시 듣고 싶었다. 언제부터 내 마음이 그렇게 정해져 있었는지, 나에게는 왜 묻지 않았는지.
설명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목이 막혔다. 내가 혼자 견디려던 하루를, 그는 자신을 밀어낸 하루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이미 여러 날의 서운함이 쌓여 있었다.
“아무 말도 못 하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내 얼굴 대신 젖은 길을 보았다. 예전에는 내가 말을 고르면 기다려주었다. 대답이 늦어져도 손을 잡고 있었고, 나는 그 손을 잡은 채로 결국 다 이야기했다. 오늘은 둘 다 우산 손잡이만 보고 있었다.
빗물이 내 소매에 닿자 그가 우산을 기울였다. 그런 버릇은 그대로였다. 나는 그 작은 움직임 때문에 더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데도 내 말을 믿어줄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손잡이를 내게 쥐여주었다. 내가 붙잡은 뒤에 손을 놓았다. 돌아서기 전 잠깐 기다렸고, 나는 그때라도 이름을 불렀어야 했다고 오래 생각했다.
그가 모퉁이를 돌아간 뒤에야 하지 못한 말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나는 우산 아래에서 혼자 처음부터 설명했다. 내 목소리는 빗소리보다 작았다.
그 후로도 여러 번 그 밤을 고쳐보았다. 내가 먼저 사정을 말했다면. 그가 한 번만 더 물었다면. 어느 쪽을 바꿔도 마지막에는 내 소매를 보고 기울어지던 우산이 남았다. 그날 때문에 좋았던 날까지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었다.
한참 뒤 그 골목을 지났을 때도 비가 왔다. 나는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우리가 서 있던 쪽을 보았다. 신호가 바뀌자 건넜다. 이번에는 그에게 할 말을 고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