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하늘을 보니 들고 나가는 쪽이 유난스러워 보였다.
약속 장소까지 가는 동안 신호가 한 번도 나를 붙잡지 않았다. 버스에는 앉을 자리도 있었다. 창문에 비친 얼굴은 생각보다 멀쩡했다. 나는 오늘 할 말을 속으로 읽었다. 더는 서로를 힘들게 하지 말자. 우리에게도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네 앞에서 그 말을 했을 때도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너는 오래 대답하지 않다가 알겠다고 했다. 내가 준비한 다음 문장들은 쓸모가 없어졌다. 우리는 커피를 다 마시지 못하고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를 한 대 보냈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냥 계단을 올라가는 일이 너무 복잡했다. 발을 올리고, 카드를 대고, 어디 앉을지 정해야 했다. 나는 정류장에 서서 조금 전까지 그렇게 쉽게 내렸던 결정을 생각했다.
다음 버스의 창문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비쳤다. 웃지 않는 내 얼굴이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한 일이라고 되뇌었는데, 그 말에서 자꾸 ‘서로’가 빠졌다.
집 앞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은 방 안에 있었다. 현관까지 몇 걸음만 뛰면 되는데, 처마 아래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네가 우산을 가져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휴대폰을 꺼내 날씨를 보았다. 네가 있는 동네에도 비 표시가 떠 있었다. 화면을 누르는 동안 손등 위로 물이 떨어졌다. 처마 안쪽까지 비가 들이치는 줄 알았다.